김승옥 장편소설 (1964, 1965) 리뷰

<무진기행> (1964)

<서울, 1964년 겨울> (1965)

 

그레고리 이브스

2016-03-17

 

단편소설은 마치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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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1아니면 0, 흑 아니면 백인 이진법 세계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미묘한 차이도 없고 회색 지대도 없다. 1부터 50 사이에서 어떤 숫자가 걸리든, 상자 0으로 배정된다. 51에서 100 사이 어떤 숫자든, 모조리 상자1이다. 범주는 2개 뿐. 중간은 없다.

 

이제 이 1과0 이진법을 인간처럼 복잡하고 존재처럼 섬세하고 미묘한 것에 적용해보자. 무지개와 같은 인간 감정의 스펙트럼을 단 두 상자에 나눠 넣어보자. 갖가지 성격이며 괴벽, 그 모든 연인들, 온갖 사이코패스, 전부 이 상자 두 개에 넣는 것이다. 세계를 둘로 나누어 보자. 단 둘로. 세계를 1과 0으로, “나의” 나라와 “너의” 나라로 나누어보자. 이러한 구분법은 현대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새로운 세계와 낡은 세계, 도시와 시골, 부모와 아이, 안개와 햇살, 평화로운 세계와 고통스러운 세계로 나누는 것이다.

 

언뜻 보면 오른손과 왼손, 남성과 여성, 낮과 밤처럼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를 두 개의 범주로만 판단하고 분류한다면 결국 게으른 사고로 귀결된다. 존재라는 원통 기둥을 선택이라는 사각 구멍에 밀어넣을 수 없듯, 이는 위험한 분류다. 크라카타우 섬 지하의 용암처럼, 트라우마로 억압된 감정처럼, 이별 후의 눈물처럼, 우리는 끓어오르고 이내 폭발한다. 너무 많이 보았고 충분히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기 눈을 뽑아버리는 황야의 리어왕이 된다.

 

이는 존재라는 무거운 이분법적 짐이자, 김승옥(1941-)이 단편 ‘무진기행’(1964)과 ‘서울 1964, 겨울’(1965) 에서 이야기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 두 작품을 문예지 ‘사상계’에 발표할 당시 김승옥은 스물두셋 청년이었다. 김승옥의 서울은 혼돈이었다. 1961년 군인들이 정권을 잡았다. 국가는 특정 산업에만 경제적 지원을 하고자 했다. 논밭은 시멘트와 철강으로 막 거듭나던 차였고, 새로운 젊은 작가들 무리가 서울의 문학계를 휩쓸고 있었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두 편은 1960년대 중반 한국이라는 세계를 흘끗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한다. 한 편은 단순한 줄거리로 한 남자가 고향으로 돌아가 보내는 1주일을 그린다. 다른 한 편은 서울 곳곳의 술집을 전전하는 어느 한겨울밤의 이야기다. 두 편 모두 주인공들의 삶을 슬쩍 들여다볼 수 있는 단편소설이라는 작은 창문으로는 딱 알맞은, 단순하고 완벽한 줄거리다. 그러나, 김승옥이 열고 닫는—독자들에게 잠깐이나마 그의 세계 속 찰나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이 단편소설이라는 창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그저 고향으로 떠난 여행이나 지저분한 술집에서 보낸 하룻밤 이상이다. 이 창으로 보이는 것은 존재의 이분법적 무게다. 그렇게 간단히 우리 자신을 어떤 범주로 분류해버릴 수는 없다.

 

역사적 시대

 

1960년대 서울은 격동의 시기였다. 복잡한 배경이 뒤얽힌 민족상잔의 비극은 10여 년 전 끝났다. 10년도 더 묵은 적색 공포가 한국을 뒤덮고 있었다.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반공산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었고, 한국 사회에서 낼 수 있는 공공의 목소리는 극소수로 제한되었다. 한국은 여전히 가난했고, 지금 우리가 아는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192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축적했던 부는 진작에 모두 잃었다. 전쟁과 부패정치 덕분이었다.

 

고집스럽고 부패했고 겁에 질려 강력하게 정부를 통제하던 노인은 1960년 4월 시위대에 의해 정권에서 쫓겨났다. 시위대를 이끈 것은 대부분 학생들과 교수들이었다. 1961년 단신의 강인한 소작농 출신 군관이 그 자리에 앉았다. 1961년에서 1963년까지 그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가를 운영됐다. 1962년 한국 최초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됐다. 1963년 이 군부독재자는 군복을 벗고 양복을 입으며 “대통령”이 됐다. 1965년 한미주둔군 지위 협상이 이뤄졌다. 1965년 6월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됐다.

 

다시 서울. 당시 고등학교와 대학 등록금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비해 4배나 폭증했다. 대부분의 대학들, 그중에서도 4년제 명문대는 모두 서울에 있었다. 아버지들은 아들을 서울로 보내 대학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꿈이었다. 딸들은 물론 아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어린 남학생들은 부모의 간섭과 잔소리를 떠나 그 흔한 하숙집에 복작대며 살았다.

 

대학에서는 많은 학생을 원하지 않았다. 아니, 많은 교수들을 원하지도 않았다. 대학은 학생수가 넘쳐 이미 포화 수준에 이르렀고, 각 수업에서 교수들이 지도해야 할 학생수도 너무 많았다. 교수들은 학생들 못지 않게 자주 수업을 빠졌다. 학생들은 이미 고등학교에서 노예처럼 공부했다. 직업을 갖기 위한 교육이라면 이미 충분히 받았고, 대학에서는 게으름을 피워도 됐다. 그럼에도 굳이 등록금을 내고 대학, 특히 인문대나 문학 전공을 들으려 했고 대학원에 남으려 했던 이유는 물론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서울은 아직 작은 도시였고,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그런 동네처럼 보였다.

 

바로 이 학생들과 교수들이 시위를 해서 폭군을 자리에서 몰아냈다. 이들은 또한 뒤이어 새로운—하류층, 소작농 출신의, 말수는 적고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는 많이 남긴—독재자가 정권을 강화해 나가는데 맞서야 했던 이들 역시 이 학생들과 교수들이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중반 서울에서 정치는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대학 교육을 받은 식자층 남성이라는 소수의 집단에서 급부상했다. 이들 식자층은—당시만큼은 아니지만 교육의 확대, “한국인”이라는 것의 의미의 확장, 발전된 기술을 통해 오늘날에도—도시화된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다. 단, 이는 현대 한국사회를 건설한, 즉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엄청난 동력이 가지고 있었던 위엄이나 용기와는 다르다. 이것은 드라이버나 용접기 대신 책을 자신의 주무기로 삼는 사람들이 쓰는 일종의 “허세 섞인 지식인 관점”, 혹은 최소한 사회적 목소리를 대변하리라 여겨지는 이들의 “관점” 이었다.

 

이 젊고 게으른 식자층 남성들은 모여 앉아 스스로 자격을 부여하며 “대단한 일”들을 논의했다. 당시 서울에는 활발하고 생동감 넘치는 지적 분위기가 있었다. ‘창작과 비평’과 ‘사상계’는1960년대 1만8천부 정도를 찍던 잘 나가는 문예교양지였다. 한국 정부가 ‘사상계’ 발행을 곧잘 중단했던 것을 보면 우수한 잡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1960년 장면 총리 재임 당시—이승만 전 대통령이 퇴각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정변을 일으켰을 때—한국에는 기자나 기고가만 10만 명 가량이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서울에서 활동했다는 통계를 인용한 바 있다. 모두가 읽고, 모두가 쓰던 시절이었다.

 

이 남성들은 한데 모이는 것을 목적으로 서울의 “다방”에서 만나곤 했다. “다방”이란 술집부터 홍등가, 유흥가, 커피숍 등을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이 엘리트 학생들은 이런 곳에서 만나 정치권 루머에서부터 문학사조, 당시 한국 사회에 벌어지던 사건사고나 현상, 음악과 책과 술과 창녀에 대한 모든 것까지 손쉽게 나누고 접했다. 곧 대체로 같은 학교나 같은 수업을 듣는 정치학과나 철학과 학생들끼리 비밀리에 모임을 만들었다. 일자리 없는 남학생들을 한데 모아 보자. 정치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성장하는 환경에 이들을 뒤섞어보자. 여기에 “다방”과 작은 모임들을 더해보자. 이내 폭발할 준비가 완료되었다.

 

1960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 서울대학교 불문학과에 신입생이 들어왔다. 19세의 김승옥이었다. 김승옥의 정치적 필력은 이미 무르익었고, 날카로운 위트를 뿜어내고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로 자신의 시대를 묘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재학 당시 김승옥은 서울경제 신문에 만화를 그렸고, 1962년에는 작가로서 유명세를 가져다 준 첫 번째 단편을 한국일보에 출간했다.

 

1964년 대학 졸업반이었던 김승옥은 ‘무진기행’을 발표했다. 독자들은 김승옥의 단편소설에서 거대한 이분법의 단편을 공유하고자 ‘사상계’를 사 읽었다. 새로 들어선 경찰국가는 서서히 사회 통제를 강화하고 있었고, 막 산업화가 시작되고 있었으며, 일본과는 평화를 이뤘고, 이제 한국은 20세기 마지막 롤러코스터의 출발선 바로 지점에 있었다.

 

존재의 이분법

 

어떤 이들은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산다는 것이 꽤나 무거운 짐이라고 한다. 실제로 만약 사람들이 출생이라는 우연 속에 내던져지지 않았다면 스스로 한국인으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했을지 의심스럽다. 이곳 한국 사회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면 미디어를 통해, 부모, 학교, 군대를 통해 한국인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 사람들은 한국이라고 하는 이 사회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20세기 후반의 발전으로 문화, 민족, 인종이 뒤섞인 이 글로벌한 포스트-식민주의 꾸러미—예를 들자면 아아, 현대적이기 그지없는 20세기 종교, 민족주의—는 “한국인”이 되는 것을 한편으로 좀 더 쉽게 만들어준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그저 무지개에 색을 하나 추가하는 것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은 이제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글로벌한 사람이 되는 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맞닥뜨린다. 한복을 입으면 한국인인가? 햄버거를 먹으면 한국인이 아닌가?

 

자말 압딘 알 아프가니(Jamal ad-Din al-Afghani), 량치차오(Liang Qichao, 梁啓超),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같은 철학자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서구에 의해, 서구를 위해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사회란 무엇이며, 수많은 사회로 구성된 세계 속에 이 사회는 어떻게 자리하는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마주하는 방식, 한국이라고 하는 사회를 생각하는 방식은 김승옥 단편소설의 핵심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승옥은 잠시 휴식을 찾아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을 통해, 추운 겨울밤 새로 사귄 친구들과 술집을 전전하는 주인공을 통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한국 영화와 문학에는 반복되는 이분법적 세계들이 있다. 도시와 시골, 육지와 섬, 개발과 낙후, 현대와 근대, 현재와 과거 등. 이러한 이분법적 점수 매기기는 또한 나의 고향과 타인의 고향의 유명세를 비교할 때,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와 타인의 초등학교,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와 타인의 고등학교, 나의 군대 생활과 타인의 군대생활, 이 모든 것을 비교할 때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의 소비문화로 진입하면서는 나의 핸드백과 너의 핸드백, 나의 스위스제 시계와 너의 스위스제 시계, 나의 외제차와 너의 외제차, 내가 대기업 직장에 취업한 해와 네가 대기업 직장에 취업한 해, 내 남편의 상사와 네 남편의 상사, 내 자녀가 입학하는 초등학교와 네 자녀가 입학하는 초등학교에도 나타난다. 이 원형의 궤도는 계속된다. 사회도 계속된다. 김승옥이1964년, 1965년에 열어놓은 짧은 단편소설이라는 창문을 통해 이러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도 여전하다.

 

작가 자신으로의 김승옥

 

제2공화국 체제가 들어섰을 당시 김승옥은 열아홉이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쿠데타가 처음으로 벌어졌을 때 김승옥은 스무 살이었다. ‘무진기행’을 썼을 때가 스물셋이었다. 작가로 데뷔한 것은 그로부터 2년 전인 1962년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을 쓴 김승옥은 스물넷이었다.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곧 시드는 히야신스처럼, 김승옥(1941-)은 21세부터 25세, 연도로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10편 남짓의 단편소설, 수필, 시나리오, 중편소설 등을 집필했다. 김승옥의 작품들은 서울의 일간지와 문예지에 발표할 당시에도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꾸준히 읽힌다. 김승옥은 1960년대 초중반 오만한 전 독재자에 질릴 대로 질리고 숨통을 죄는 새로운 독재자에 두려움을 느끼던 작가군의 필두에 있었다. 김승옥은 급속한 도시화와 그리하여 급속하게 성장중인 새로운 도시 생활의 현실에 대해 썼다. 김승옥은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또 현대와 과거 사이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대해 썼다.

 

글쓰기는 그의 힘이었다. 그는 대표작이 된 두 편의 단편소설에서 시대정신을 포착해냈다. ‘무진기행’은 알려진 것만도 두 편의 각기 다른 영문 번역이 출간되어 있으며 두 번역본 모두 54쪽, 1만 단어가 채 안 되는 분량이다.

 

1967년작 영화 ‘안개’는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김승옥 본인이 시나리오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 영화 ‘안개’는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고전영화극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KoreanFilm’에서 전편을 영문 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다.

 

김승옥의 작품 중 영어로 출간된 것은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 두 편 뿐이다. 도서출판 아시아에서는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현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빨간색 커버의 얇은 단편소설 시리즈를 내놓았는데, 한국어 소설 원문과 영문 번역이 함께 제공된다. ‘무진기행’은2012년 케빈 오록의 번역으로 출간되어 있다. 이 시리즈의 단편소설 75편은 ‘분단’, ‘사랑과 연애’, ‘금기와 욕망’ 등의 테마별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진기행’은 ‘산업화’ 중 한 편으로 소개되었다.

 

‘서울, 1964년 겨울’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Land of Exile: Contemporary Korean Fiction—Expanded Edition’의 전자책을 구매하면 읽을 수 있다. 2015년 루트리지(Routledge)에서 출간됐으며, 마샬 R. 필(Marshall R. Pihl), 브루스 풀턴(Bruce Fulton), 주찬 풀턴(Ju-Chan Fulton)이 편집인으로 참여했다. 이 소설집은 1948~2004년 한국에서 출간된 단편소설을 모았다. 총 16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 수록된 것은 제5장이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한 스쳐지나가는 찰나일 뿐이다. 체호프든 헤밍웨이든 김승옥이든, 단편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창문을 열어줄 뿐이고, 창문은 닫힌다. 우리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본다. 우리는 낚시를 가는 노인과 소년을 본다. 우리는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는 남자를 본다.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뒤마와 같은 깊이는 없다. 창문이 열린다. 창문이 닫힌다. 우리는 태어나고 우리는 죽는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적 이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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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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