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깊은 집> (1988)
글∙김원일
번역∙서지문 (2013)
서평
그레고리 C. 이브츠, 2016년 7월 16일
나는 <마당깊은 집>을 읽어가며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작품은 작가가 전후 가난과 도시의 삭막함 속 가족과 대구에서 보낸 첫해인 1954년과 1955년의 일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작가 김원일은 종결부에서 진가를 발한다. 종결부는 마치 에필로그와 같은데 등장인물에 대한 에필로그이자 나라 전체에 대한 에필로그다. 1988년 당시 46세였던 작가는 침착하게 십대 초기 중 가장 힘겨웠던 두 해를 요약해서 말한다. 이 때 작가는 느슨한듯했던 결말을 조이고 다양한 등장인물 간 고리를 단단히 연결하며 71년간 한국의 실험을 요약하는 듯 작품을 맺는다.
“내 대구 생활 첫 일년이 저렇게 묻히고 마는구나 하고 나는 슬픔 가득 찬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굶주림과 설움이 그렇게 묻혀 내 눈에 자취를 남기지 않게 된 게 달가웠으나, 곧 이층 양옥집이 초라한 내 생활의 발자취를 딛듯 그 땅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229쪽)
바로 이 문단은 71년간 한국의 실험을 정리해서 말해준다. 한국을 비롯해 모든 비서구권 사회가 변화하고 적응해야 했던 서구의 기준은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거의 위로해주지 못하지만 해주기는 한다. 인간이 잘하는 일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치유와 진전이다.
현대의 한국 사회는 역사의 상흔을 달래기 위해 국가주의적 아이콘을 여러 모로 사용한다. 국내 지역 언론이 치적과 자신감에 찬 내용으로 가득한 것이 그 일례다. 소설의 화자 길남 역시 대구에서 첫 집이 허물어지고 그 위에 서양식 주택이 세워지는 현상을 치유와 진전의 징조로 받아들인다.
“그 마당깊은 집에는 여러 가구가 휴전 직후의 어수선한 세월을 함께 넘겼다.”(12쪽)
하지만 나는 작품 초반부터 김원일이 회고하고 창조한 세상을 한 발 물러서 바라보았다. 작가는 <마당깊은 집>을 1988년 46세에 썼다. 때는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서울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민주주의 시위가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였다. 소설은 1954년과 1955년 대구에서 삶을 회고하고 있다. 사회는 여전히 한국내전, 즉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이 전쟁은 앞으로 “한국”이 의미하는 바를 결정하는 전쟁이었다. 비록 낙동강 어귀에서 참혹한 전투가 일어나고 1950년대 중반까지 대구에서도 정치적 살인과 보복 살인이 일어나긴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대구는 부산 지역으로 전쟁 동안 북한군에 점령당하지 않았던 곳이다. 1950년 점령당하지 않은 지역으로서 대구에는 남쪽으로 향한 수많은 피난민이 정착했다. 대구는 부산 지역 내에 있는 첫 번째 대도시였다. 경기도와 황해도, 평안도 심지어 만주까지 각지로부터 온 한국인들이 대구에 머물렀다. 그리고 특히 화자 남길이 살았던 마당깊은 집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 대표적인 표본을 보여주는 듯 하다.
“사람이 많이 끊은 중앙통 일대와 양키시장……”(29쪽).
작가가 회상하는 마당깊은 집에는 하나같이 가난했던 네 가구와 주인집, 식모 안씨가 살았다. 경기댁 가족과 치과병원 기공사인 그녀의 아들, 평양댁, 주인아저씨, 금은방 주인, 삯바느질하는 여인, 상이군인, 폐병 환자, 김천댁 아들, 위채 식구, 경기댁 가족, 평양댁 가족, 준호네 가족, 그리고 화자인 길남이 세 명의 동생 및 어머니와 전후의 혼란기를 살고 있다.
화자는 당시의 대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한편, 피난민, 실업자, 잡상인, 지게꾼, 거지, 구두닦이 또한 발에 차이는 돌멩이만큼이나 널려 있었다.” (7쪽) 마당깊은 집에도 이런 사람들이 최소한 한 명 이상은 있었다.
“니가 크야 한다. 질대 (왕대)같이 얼렁 커서 뜬뜬한 사내 구실을 해야 한다. 그래야 혼자 살아온 이 에미 과부 설움을 풀 수가 있다.” (140쪽)
매 시즌마다 KBS, SBS, MBC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슷비슷한 TV드라마는 <마당깊은 집>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남길은 1950년대 중반 전쟁이 휩쓸고 간 한국에서 이 넓은 집에서 일어났던 시련과 고난을 회상한다. 부유한 주인집과 금은방, 중산층 가족, baking rolls, 가난한 가족, 공중 옥외 변소, 사랑에 빠지기, 나무 패기, 미국 유학, 공산당 동조자, 딸 시집 보내기, 처음 보는 서양의 크리스마스 파티, 부패한 정부 관리, “현대적”과 “한국” 간 차이에 대해 알기, “현대적 한국”이라면 의당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변모하기, 비밀경찰, 공작원, 미국 대위와 사랑에 빠지기, 중학교 시험 낙방, 신문팔이까지. 하지만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분명히 소설에서는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지만 동시에 모든 사건이 일어난다.
사회적 논평의 측면에서 독자는 김원일이 묘사하는 1950년대 중반 한국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한국의 여러 가지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실제 건물과 기반산업은 변했겠지만 인간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작품에서 독자는 계속해서 갖가지 요소로 사람이 평가를 받는 엄격히 계층화된 사회와 심한 성차별, 마치 도널드 트럼프식의 인종주의가 만연해 있음을 본다. 이러한 내용들이 거리낌없이 면전에 펼쳐진다. 비슷하게 오늘날의 신문이나 현대 한국문학 작품에서도 계층화와 성차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인종주의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하수도와 전화선, 도로와 건물은 바뀌었다.
예를 들어 작품 말미에 한 장면을 살펴보자. 마당깊은 집에 함께 거주하던 한 젊은 여성이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그의 운전수와 함께 집에 돌아온다. “불을 켜고 달려온 미군 지프가 골목 입구에 멎었다. 운전사는 흑인이었다. 빨간색 머플러를 쓴 미선이 누나와 나란히 앉았던 미군 장교도 따라 내렸다. 그 양코배기 장교는 바로 위채 대청에서 벌어졌던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에 참석했던 젊은 대위였다. 남녀는 골목 입구에 마주보고 서서 한참 동안 영어로 무슨 말인가 나누었다. 미군이 미선이 누나의 잘록한 허리에 손을 두르고 있었다.”
“술래잡기하던 아이들이 멀찍이 서서 미군과 미선이 누나를 보고 욕지거리하며 킬킬거렸다. ‘쏼라쏼라, 주잉검 기부 미.’ ‘코 큰 놈은 미국늠,’ 미국늠은 좆 큰늠,’ ‘양공주데이. 미국늠 좆 빨아묵는 양공주 맞데이.’ ”(196쪽) 놀랍게도 작가는 아마도 자신이 비슷한 말을 했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1954년 위와 같이 묘사된 인종차별주의, 오로지 한국 여성만을 향하고 이상하게도 한국 남성이 대상인 적이 없는 이 편견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상당 수준 잔존한다.
한편 성차별에 대한 예는 이 자리에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순화는 시집 가모 서방 잘 받들고 살림 아물게 잘 살 끼다.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하이께.” (p. 155)
그럼에도 이 작품은 하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 즈음에서 나는 독자들에게 스포일러에 대한 주의를 해야겠다. 이야기 전반에 나타나며 에필로그에 이르러 드러나는 사실은 길남의 남동생 길수의 슬프고 가슴 아픈 죽음이다. 길남의 두 동생은 살아남았고, 작품 말미에서 이 둘이 성공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막내 길수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이다. “밤마다 따뜻한 짐승 새끼이듯 내게 화로 구실을 해주던 길수는 그 질긴 독감으로부터 살아남았으나, 그로부터 겨우 삼 년을 더 채우고, 우리 집안에 가난의 그림자가 걷히기 전 ‘더러운 세월’과 함께 죽었다. 그 아둔한 걸음과 어눌한 발음 탓으로 다른 아이들이 다 가는 초등학교 입학조차 거절당한 채 병원 신세 한번 지지 못하고 어느 추운 겨울날 뇌막염으로 숨을 닫았으니, 그의 나이 만 여덟 살 때였다.”(216쪽) “우리 집안에 가난의 그림자가 걷히긴 전”이라는 구절은 정부의 언론발표나 근사한 홍보용 비디오 등 그 어떤 것보다도 현대 한국 사회가 겪었던 실험을 가장 잘 요약해준다. 이 구절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한국을 말하고 있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작가는 경기댁이 서양식 뷔페를 처음 본 반응을 매우 그럴듯하게 묘사했다. “음식두 지랄같이 처먹네. 서서 낄낄거리며 먹는 저 서양식 짓거리가 대체 무른 꼴이람. 음식 맛두 제대로 모르겠군.”(174)쪽). 결혼한 중년 여성의 자신감과 파워는 1954년이나 2016년이나 변함없이 막강하다.
<마당깊은 집>은 1988년 발표됐고 2013년 한국문학번역원(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of Korea, LTI Korea)과 달키 아카이브 출판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한국문학총서의 일환으로 서지문이 영어로 번역했다. 오자의 개수가 동일한 시리즈의 다른 작품에서보다는 적게 발견되지만 여전히 전문적인 출판서라고 간주하기에는 너무 잦다. 실제로 한국문학번역원은 영역 대상 작품을 선정하면서 한국 최고의 작가들을 선택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총서 목록 중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영어권 독자로서는 이 총서가 한국문학을 접할 수 있는 통로인 것이다. 다행히 유명 작가인 박완서나 한강의 경우 독자적으로 다른 출판사를 통해 영어권 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마당깊은 집>은 LTI 한국문학총서 중 작가가 노후나 중년에 이르러 유년시절, 주로 식민지 시대나 한국전쟁, 전후를 회상하는 범주에 속한다. 이 작품은 1954년과 1955년에 대구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들로 구성돼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분명 작가 김원일 정직한 친구이자 저녁식사 초대 손님으로서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김원일이 펼치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모든 인용 페이지는 영역본 기준입니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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