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 (1921) 현진건, “발가락이 닮았다” (1932) 김동인

<빈처> (1921) 현진건

<발가락이 닮았다> (1932) 김동인

 

서평

그레고리 C. 이브츠, 2016년 8월 23일

 

1920년 한국에는 폭발이 일어났다. 전쟁이나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미디어, 책, 사회적 담화에 대한 이야기다. 약 1876년부터 1945년 8월 해방을 맞기까지 한국이 당한 식민지배는 압제적이고 극심했다. 하지만 잔혹하거나 가학적이지는 않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은—물론 여성은 아니었지만—오사카나 도쿄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고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에서 기차표를 구해 북쪽의 선양, 창춘, 하얼빈을 갈 수 있었다. 조선인들은 만주인과 함께 2등 시민으로 일본인보다는 아래였지만 한족보다는 위였다. 이로써 조선의 남성들은 일본 제국주의 영토 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고 이들은—최초로—세계를 보았다. 동시에 1920년대 한국에서는 문학과 예술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세계1차대전(1914~1918년) 이후 세상은 모든 것이 바뀌며 제국이 무너져갔다. 아일랜드독립전쟁(1919년 1월)과 이집트혁명(1919년)이 일어났다. 터키독립전쟁이(1919년 5월)이 발발했으며 인도에서는 새 정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중국5∙4운동(1919년 5월)도 이 당시의 사건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나 1919년 3월 서울의 거리에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억압받는 식민지 국가가 그러하듯이 조선은 주권과 독립을 주장했다. 1919년 3월 1일 한국의 민족대표들은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때까지 식민지 지배하의 한국은 출판의 자유가 없이 매우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었다. 검열이 심했고 일본은 1907년에 신문, 1909년에는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신문이나 잡지를 발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기가 어려웠다. 오늘날 인터넷에 검열이 존재하거나 차단 웹사이트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시대가 1990년 초반일 뿐.

 

이러한 탄압은 3월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오게 만든 동기의 일부로 작용했다. 3∙1운동으로는 사실상 어떤 것도, 즉 조선의 독립도 이루지 못하고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가지, 일본은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던 법을 약화시켰다. 무엇보다 실제 결과와 상관없이 3∙1운동의 상징성은 상당히 중요해, 현대 한국 정부가 한국적인 특징을 정의할 때 자주 사용되곤 한다.

 

꽤 소규모의 하지만 열심이었던 3∙1운동 이후 일본 식민정부는 1920년 새로운 문화정책을 발표했다. 그 결과 누구나—주로 지식인과 시간이 있는 상류층 젊은 남성—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모두를 대상으로 신문을 발행하기가 쉬어졌다. 1920년 한 해에만 잡지와 신문, 기자들에게 409건의 발행 허가증이 발급됐다. 그전까지는 과거 10년 동안 경우 1건만 허가를 받았었다.[1]

 

서울의 공기에는 긍정주의의 느껴졌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왔다. 오늘 다룰 작가 중 한명인 김동인을 포함에 다른 작가들이 도쿄에서 한국어 문지 <창조>를 출간했다. 1921년엔 시 동인지 <장미촌>이 발간됐다. 둘 다 “순수 문학” 잡지로 <백초>와 <폐허>라는 작품 모두 1920년에 발표됐다. 1925년 8월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이 결성됐다. 작가, 극작가, 작곡가, 예술가, 영화감독. 등이 그 구성원으로 1935년 일본이 해산시킬 때까지 <문학창조>, <연극운동>, <군기>, <집단>과 같이 다양한 잡지를 출판했다.

 

이러한 물결에 힘입어 1900년에 출생한 두 작가, 현진건(1900-1943)과 김동인(1900-1951)이 부상했다. 둘 다 20대 동시대에 한국 문학의 첫 번째 물결을 타게 된 이들은 근대 한국 단편의 선구자로 간주된다. 현진건은 대구, 김동인은 평양에서 태어났다. 현진건은 1920년 문지 <개벽>으로 등단했고 김동인은 1919년 <창조>로 등단했다.

 

현진건의 <빈처>는 돈벌이와 현실과 고투하는 작가의 이야기로 1921년 문지 <개벽>에서, 뒤이어 1932년 김동인의 자기 수용과 용서에 대한 단편 <발가락이 닮았다>가 발표됐다. 두 단편 모두가 거의 종교적인 이야기에 가깝고 종교에서와 같은 깨달음을 준다.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랑과 수용, 타인을 용서하고 자기를 용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논하고 있다.

 

<빈처>는 사랑이 물질적 혹은 실질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물건이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 친구 관계, 공동체로부터의 소속감, 친구와 동료들이다. 인간이 경제적으로 생각하는 이성적인 존재인 만큼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진정으로 나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갓 결혼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받아들이고 과거에 했던 행동들을 스스로 용서하는 법을 알아가는 한 젊은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단 7페이지에 지나지 않지만 자기 용서에 대한 가장 간략한 가르침 중 하나다. 석가모니와 예수, 마호메트가 전하는, 즉 자기를 수용하고 미워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인간으로서 발전하는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여러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김동인은 이 일을 단 7페이지 단편으로 해냈다.

 

두 단편 모두 현대 한국 사회에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한국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들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두 작가에 대해서 알고는 있다(현진건과 김동인 모두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한다). 오늘날 한국은 잿빛 디스토피아다. 1920년대 1930년대 문화가 꽃피던 시대와 반대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과 자동차 사고 사망률은 매우 높고, 출산율과 여성의 사회참여율은 매우 낮다. 이러한 시대에 사회적 압력과 상관없이 본인이 선택한 직업을 수용하고,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자기 용서와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수용하라고 강조하는 두 단편을 읽는 일이야말로 치유와 행복을 향한 작은 움직일 수도 있다.

참고

문학과 사진을 비교할 수 있다면 지난 몇 십 년간의 한국의 과거를 사진으로 진실되게 재현한 작가들이 많다.

김기찬 사진작가는 사회가 기억하기 원하는 신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초고속 성장을 포착한 아름다운 사진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진은 가난의 밝은 면을 보여준다.

반대는 최민식 사진작가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더 정직한 면, 성장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그의 기억은 선택적이 아니다. 빠른 경제 성장의 적나라한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어떤 것을 기억하고 기억을 창조하는 데 있어 인간과 사회는 때로는 추악하더라도 정직한 진실과 깔끔하고 정련된 사건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세상을 장미빛 시각으로 바라보면 내 문제와 고통으로부터 안전하게 빗겨날 수 있다. 여러 면에서 김동인과 현진건은 이 스펙트럼에서 밝은 쪽에 서 있는 듯 하다. 이들은 더 깔끔하고 삭제까지 해가며 1920년대와 1930년대 한국사회가 스스로 생각하고 싶어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현재 한국인들이 3∙1운동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단편 모두 인간의 영혼에 대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 작품은 사랑과 수용을 찾을 수 있는 예술가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자기 용서와 과거와 화해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쏟아져 나온 작품들 중 이 두 작품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읽히고 있다는 점이 그리 놀랍지 않다.

 

한 사람의 과거와 화해하려면 기억을 선택적으로 해야 한다. 실제로 기억은 정의상으로도 선택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현대 한국 정부의 의무 중 하나는 한국적인 것을 창조하는 일이다. 한국의 역사를 선택적으로 돌아보면서 상상 속의 공동체 “한국”을 형성하고 세계에서 한국적인 것을 정의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여러 계파가—때로는 반목하지만 거의 보조를 맞추며—함께 나아간다. 이는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고 북한과 연변의 조선족까지 그리고 로스앤젤로스의 한인타운까지 아우를 정도로 광대하고 열린 마음으로 수행하는 과업이다.

 

그러니 어느 오후 <빈처>와 <발가락이 닮았다>를 읽어보자. 그러면 한 두 가지의 가르침, 어떻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근대의 한국이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일말의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현진건의 <빈처>는 2013년 소라 김-러셀이 영역했고 <발가락이 닮았다>는 얼마 전인 2014년 스티븐 엡스테인과 김미영이 공역했다. 두 작품 모두 한국문학번역원이 출간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의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서 괜찮을듯한 생각을 나누어보려고 한다. 국문학자라면 <개벽>, <창조> 등 1920년대와 1930년대 출간된 동인지를 모두 취합해 현대 한국어로 전자 출판하고 최종적으로 영어로 번역을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세계가 근대 한국 문학의 뿌리에 접근할 수 있다. 영역본이 온라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시간이 지나며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세계의 학자들이 근대 한국 문학의 첫 세대에 대해 폭넓게 다가가도록 해주며, 우리가 한국적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선택의 폭을 훨씬 넓혀 줄 것이다.

 

 

[1] Source: https://koreanliterature.wordpress.com/tag/kim-do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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