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2014) 글. 한강 — 리뷰

<소년이 온다> (2014) 글. 한강

리뷰. 그레고리 C. 이브츠

2016년 10월 11일

짙고 짙은 어둠이 현대 한국 사회에 드리워져 있다. 안 그렇게 들리겠지만 북한에서 저질러지는 잔혹한 행위는 아니다. 이 짙은 어둠은 38선 이북의 공포보다 더 소비주의와 산업화에 가깝다.

이 어둠은 코리언 드림을 향한 믿음이 상실되며 유래된 소리 없는 공허함이다. 이 어둠은 1940년대, 1950년대 출신 세대가 겪는 신뢰의 상실, 그들이 무에서 일구어낸 부에 대한 믿음의 상실에서 유래한다. 이 어둠은 자연과 나무, 공원의 부족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너무 많고 푸름은 너무 적다. 이 어둠은 협소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 영혼을 품을 장소라고는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유래한다. 이 사회에는 학교를 위한 공간도, 비주류가 목소리를 발할 공간도 없다. 실질적인 공간이 없다. 민주주의 정치가 날개를 펼치고 비상할 정치적 공간이 없다. 1980년 독재시절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을 생각해보자.

현대 한국의 이 질병은 예술의 형태로 가장 잘 드러난다. 한국의 인디 음악, 애니메이션, 웹툰, TV드라마,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에서 그러하다.

1960년대 전후로 태어나 1990년대 무렵 성인이 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짙은 우울과 신뢰의 상실과 같은 흐름을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최고의 작가이자 정신분석가다.

이러한 스펙트럼 중 기괴한 방향의 한 끝에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2009)가 놓여 있다. 좀 더 정상적이고 밝은 방향으로는 김영하의 <빛의 제국>(2006)이나 황석영의 <바리데기>(2007)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디 즈음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6)이 있다.

최근 영미권에서 한국 문학에 대해 쓴 기사는 온통 한강에 대한 얘기로 넘친다. 한강의 이름은 한국 문학을 논하는 온갖 매체에 등장하며 다른 한국 작가들을 압도하고 있다. 바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덕분이다. 영어권 문학만 접했던 독자라면 그저 훌륭한 문학 작품이 한국어로 쓰였을 뿐인 것인데, 한강이 “한국 문학”을 대표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한강은 한국어로 글을 쓴다. 그렇다고 이 점이 그녀를 한국 문학의 대표 작가로 만들지는 않는다. 조너선 프랜즌(Jonathan Franzen)이 영문학 혹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영문학과 미국 문학에 여러 작가들이 존재하듯이 표면상 무성의하게 붙여진 “한국 문학”에도 여러 양상이 존재한다.

이 메시지를 통제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 걸친 짙고 짙은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열성인 한국 정부는 한국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한국인이라는 점을 내세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의 홍보당국은 “K”로 시작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케냐(Kenya)와 쿠웨이트(Kuwait)까지 아울러—자신의 것인 양 주장하며 이 “한국적인 것”이라는 대지에 태극기를 곧게 새운다. 작가가 원하는지 여부와 한국사회가 작가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이 “한국”이라는 유일신적 믿음—우리가 어떻게 정의하든 사회, 정치, 예술 부문에서 존재하기는 한다—는 거의 북한사회에 가깝다. 그 동안 여러 한국 정부가 “한국적인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심 끝에 선언하면서 그 의미는 변해왔다. 다행스럽게도 예리한 사람들은 이를 “국병”이라고 부른다. 국가적 보물인 국보처럼 국가적 질병이라는 뜻을 재치 있게 사용한 표현이다. 40세 이하 국민들에게 “국가주의”라는 단어가 공허하게 울리는 현 시대에, “당신, 국병에 걸렸군요”라는 말은 상대방의 허구적 국가주의가 어설프고 구시대적이라는 조소 섞인 농담이다. 

우리는 이를 2012년 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된 대중음악으로 선풍적 인기를 몰고 온 싸이 현상에서 목격한 바 있다. 당시 모든 중년 공무원들은 이 열풍에 올라타기 위해 급급했다. 싸이는 “와우 여러분, ‘강남스타일’이 인터넷에서 대히트를 치고 있는 것 같아요”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강남스타일”은 싸이의 여섯 번째 음반으로 멋지게 이름 붙인 “싸이6甲 Part1”의 트랙 3번 곡이었다. 이 노래는 유튜브(YouTube)에서 사상 최대인 약 26억 뷰를 기록했고 구글의 유튜브 개발자들은 오늘날 “마카레나” 열풍에 맞먹는 “강남 스타일”에 대처하기 위해 코딩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다시 한번 한강에게서 목격하고 있다. 한강은 매우 훌륭한 작가로 한국문학 홍보를 담당하는 중년의 공무원 모두가 그녀의 성공을 이용하기 위해 앞다투도록 만들었다. 공무원들의 눈에 한강은 수혜적인 한국 정부의 영광으로 주장되는 한국적인 것의 영역에 서 있다. 하지만 소설가의 눈에 그녀는 작가일 뿐이다. 그녀는 보고 느끼고 쓴다. 한국이 아닌 드넓은 세상에서는 아무도 한강이 한국 사람이거나 한국어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이 좋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2014년 발간되고 데버러 스미스(Deborah Smith)가 번역한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은 독자를 독재정부가 대학살을 일으킨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데려간다. 작품은 슬픔, 정신 이상, 후회, 회환에 대한 비통하고 무서운 소설이다. 작가는 사회의 고통—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페이지에 적는다. 최근 민주화를 이룬 국가, 즉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동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등 이러한 국가의 독자들은 북아메리카 독자보다 그녀의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영어로 번역된 한강의 두 번째 소설로 2015년 역시 데보러 스미스가 번역한 첫 번째 영역본 <채식주의자> 가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영역본이 출간됐다. 이 겹경사—국제적 수상과 두 번째 영역본 소설 출간—으로 한강은 남은 생 동안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보증 받았다. 사실은 그녀의 이름은 사망 후에도 기억될 것이다. 그만큼 한강의 작품은 훌륭하다. 

1970년대 후반 한강은 역시 성공적인 작가 집안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라며 1980년 5월의 광주를 겪었다. “소년이 온다”는 민주주의의 대가로서 한 끔찍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관이 나열돼 있고 관마다 슬퍼하는 가족들이 있다.

1980년의 5월과 나중의 기억을 오가며 구성된 이 소설은 민주화운동이 어린 자원봉사자, 즉 한국어 판 제목인 <소년이 온다>의 소년, 학계, 정치범, 십대 등 사회의 각계 각층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강의 작법은 확실히 “독특”하다. 시간이 어긋나며 1인, 2인칭, 3인칭 시점을 오간다. 여기서 번역자의 역할이 빛난다. 변경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몇 번의 점프는 너무 불편하지 않고 곧 독자는 패턴을 인지하게 된다. <Globe and Mail>에서 파샤 말라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작품은 생생하고 불편하지만 프레임 속에 담갔다가 꺼낸 붐마이크같이 이러한 기술적인 작은 문제들이 날카로움을 절충해준다.” * 

영역본 기준 202쪽에서 한강은 마지막 장의 제목을 “에필로그: 2013년 겨울”이라고 붙였다. 한강은 앞선 약 200쪽에 걸쳐 화해의 과정을 설명한다. 1980년 5월 광주 운동 때 그녀는 10살이었다. 이 소설은 그녀가 1980년 5월 광주, 현대 한국의 드리운 짙고 짙은 어둠과 화해화는 과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치유를 받는다. 

정리하자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스칸디나비아의 느와르 같지만 카프카와 카뮈처럼 실존적이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부조화스럽기도 하다. 한강의 작품을 작가가 한국인이라거나 한국어로 썼기 때문에 읽지는 말자. 실제 그런 생각은 작가의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가 절대로 될 수 없다. 한강의 작품이 훌륭하니 읽는 것이다.

* Malla, Pasha. “Review: Han Kang explores the legacy of 5.18 in Human Acts,” The Globe and Mail, Friday, Sep. 16, 2016.

http://www.theglobeandmail.com/arts/books-and-media/book-reviews/review-han-kang-explores-the-legacy-of-518-in-human-acts/article31930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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