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1998) 글 김주영

<홍어> (1998) 글. 김주영

2016년4월 15일

그레고리 C. 이브츠

 

이 작품의 약 절반이 진행되고 나면 독자들에게 작가 김주영의 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1939년 경북 출신인 김주영은 1998년 문학 계간지 <작가세계>에 소설 <홍어>를 발표했다. 작가는 어머니를 향한 헌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그리고 아마 도 그의 말은 맞을 것이다. 작품 속 어머니는 분명 “강인함”을 보여주며 실제로 이러한 특질은 전후 한국의 눈 덮인 두메산골, 여자를 괄시하는 시골, 미신이 지배하는 무지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강인함” 덕분에 힘겨운 시절에도 소설 속 화자의 상에는 늘 밥이 올랐지만 동시에 아이, 즉 오늘날 한국의 조부모들은 그 내면에 공허함과 바람을 간직한 채 애정과 공감에 목말라했을 수 있다.

 

김주영이 그린1950년대 초 겨울의 산골마을은 치열한 자존심과 쓰린 회한, 마을의 내분, 가족의 제약, 잇따른 소문, 그리고 실제로 소문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힘과 질투, 분노가 늘 그 곳에 실재한다. 아마도 작가 자신일지도 모를 열세 살 소년 세영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은 고통 그리고 뒤쳐지지 않으려는 안간힘과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지키려는 “체면”에 대하  어리석은 믿음으로 가득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생각이 정말로 중요하기라도 한 듯. 아이를 향한 훈육은 매질과 꾸짖음으로 나타나고, 바깥 세상에 쌓여가는 눈은 주인공 세 명을 두메산골의 초가집과 시골마을, 빛을 반사하는 어항처럼 번쩍이는 읍내의 술집에 고립시킨다. 폐소공포증이 발생한다.

 

이러한 어른들의 세계에 화자인 세영이 살고 있다. 이 이야기에 색채를 더하는 요소는 사내아이의 몽환과 공상이다. 소년은 어머니의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것을 본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다. 이 공상을 프로이트 관점에서 해석하면 소년은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어머니가 아들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소년은 이웃집 개 누룽지와 친하다. 누룽지는 그를 만나면 길길이 뛰며 마구잡이로 핥아대고 짖어댄다.  세영은 갈 곳 없이 떠돌다 한 식구 누나로 지내게 된 소녀의 뒤를 밟는다. 세영은 아이이며 아이들은 주변 세계를 받아들인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전부이자 세계다.

 

이들은 읍내에 나갈 때마다 처마높이까지 쌓인 눈밭을 헤치고 걸어야 한다. 눈을 헤치고 느릿느릿 걸으며 세영은 어머니와 떠돌이 “계집아이” 삼례를 통해 펼쳐지는 여자 어른들의 세계를 목격한다. 삼례는 폭설이 쏟아지던 어느 날 밤새 이 집 부엌으로 숨어들었다. 이야기는 짧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메트로놈에 맞춘 듯 일정한 박자로 느리게 진행된다.

 

사실 이 작품은 단편에 더 가깝다. 단편은 주인공 삶의 짧은 부분을 살펴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세 부분, 즉 화자가 열세 살에 떠돌이 삼례를 어머니가 한 가족으로 거두었을 때, 이듬해 겨울에 일어나는 사건, 대단원으로 나뉜다. 따라서 단순히 단편이라기보다 장편소설에 가깝기는 하다. 잠시 살펴보는 것 이상으로 실제적인 플롯을 갖추 긴 단편이기 때문에 어쩌면 중편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겠다. 그러니 눈이 스며들지 않도록 장화를 단단히 준비하자.

 

김주영(1939년 생)이나 박완서(1931년 생)처럼1930년대 출생 작가들의 10대와 20대는 해방과 내전, 국제전쟁, 외국군 주둔과 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점철됐다. 경제성장과 도시에서의 기회는 1960~70년대, 이들이 30~40대에 이를 때까지 발생하지 않았다. 이들이 중년인 1970~80년대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격변을 겪고, 1990년대 60대에 접어들면서 자신들이 많은 것을 이뤘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세대야 말로 이 나라가 황무지에서 농업 및 산업을 육성하고 독재 극복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고 기술을 연마해 세계로 진출한 전 과정의 산 증인이다. 본인은 공산품은 물론 화장지도 흔하지 않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이제 호주나 캐나다에서 유학하는 손주들과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한다. 상흔과 트라우마, 구금과 구타, 최루탄, 이산가족과 해외입양 이 모든 것을 겪어냈지만 대부분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대였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보면 김주영의 <홍어>(1998)는 여러 면에서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와 비등하다. 박완서가 더 장대한 소설을 썼다면 <홍어>는 그 자체로 다른 작품이다. 두 소설 모두 20세기 중반 한국을 배경으로 유년시절을 다루지만, 김주영의 작품은 길이가 짧고 초점도 보다 명확하다. 눈과 어머니, 삼례, 눈 속을 뛰어다니는 이웃집 개 누룽지를 벗어나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작품 속 강인한 두 여성은 어느 정도 원형적이지만, “강인함”을 보여주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어머니는 강한 여인이며, 삼례는 당찬 반항아다. 이 세상에서 여성의 생존법은 무엇일까? 남성이 아니라면,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도 없고 대도시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라면 생존하기 위해서 어떤 도구와 속임수, 기술을 사용해야만 할까? 화자인 세영은 생존법의 두 가지 유형을 목격하며 이 강인한 두 여인이 서로 춤추고 싸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소설 도입부(달키 출판사 영문 번역판 기준 8쪽), “언제나 부엌 문설주에 너부죽하게 꿰어 매달려 연기와 그을음을 뒤집어쓰고 있던 말린 홍어가 보이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영 모자가 살던 집에 숨어든 떠돌이 소녀 삼례가 먹어 치운 것이다. 여기서부터 한국의 눈 덮인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니 잊지 말고 눈에 대비해 장화를 준비하자.

 

작가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소재로 중편을 집필해 59세인 1998년, 문학 계간지 <작가세계> 여름호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영어권 독자라면 한국문학번역원과 협력해 달키 출판사(Dalkey Archive Press)가 <Stingray>라는 제목으로 2013년 출판한 영문 번역판이 있다(번역: Inrae You Vinciguerra, Louis Vinciguerra). 영문판은 현재 아마존(Amazon)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김주영은 결단코 우호적이지 않은 험한 세상에서 생존 경로를 찾아가는 여성의 두 가지 원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 여인들을 산골의 가난과 깊이 쌓인 눈 그리고 결국에는 독자들의 미소로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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